어제 대학 때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이다.
"맞아. 우리는 참 naive하게 살아온 거 같아. 어떤 비장함 같은 거 없이."
"그러게. 내일 잘 되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고 이런 거 없지. 우리는."
그런데 뭐 저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너무 naive했어. 고쳐야 겠어. 반성하자' 뭐 이런 문맥으로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naive하게 사는 우리 인생이 좋아. 바꾸지 말고 이대로 가자.' 뭐 이런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나 역시 별로 비장하지 않고, 그 동안 naive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물론 그럴거고.
만일 누군가가 에피쿠로스주의자들에게 쾌락이 선의 척도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쾌락과 고통의 차이를, 다시 말해 고통보다는 쾌락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쉽게 느낀다.왜냐하면 우리는 쾌락을 우리 안에 본유하는 제 1의 선으로 인식하여 쾌락으로부터 선택 및 금지의 행위를 결정하고 우리는 다시쾌락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감각이 진리에 대한 시금석이 되듯이 감정은 선악에 대해 직접적인 척도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을 구별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음식의 경우처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이 있는가 하면, 성의 쾌락에서처럼 자연적이지만 필연적이아닌 욕망도 있으며 또한 사치나 인기처럼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망도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기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쾌락이 곧 목적이라고주장할 때 그것은 방탕한 자의 쾌락도 아니며 무지하거나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상되는 성의쾌락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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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연일 음주와 연희를 벌이는 것도아니고 또 정욕의 충족, 평안한 생활을 하는, 즉 생선을 즐기고 호화로운 식탁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사치도 아니다. 오히려그것은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동기를 탐구하거나, 정신이 매우 혼란할 때 생기는 잘못된 의견을 떨쳐 버리는 건전한사유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육체의 쾌락을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러한 쾌락에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은부자연스럽고 불행과 고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밝히고자 한 것뿐이었다. 어떤 육체적인 쾌락은 결코 완전하게 만족되지않는다.
만일 그러한 쾌락에 계속 빠지게 된다면 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항상 불만족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항상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더욱 많은 돈이나 대중의 인기, 혹은 외국산 음식이나 고관직을 원하게 된다면그는 항상 현재의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늘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그의 본성을 최소로 억제할수 있고, 쉽고 빠르게 필요한 만큼 만족시킬 수 있다. 적절한 욕구가 만족될 때 인간의 본성은 균형을 이룬다. 애식가가 자신이좋아하는 음식을 과식할 때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적절한 빵과 물을 먹을 때 행복을 더 쉽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은음식을 조금만 먹도록 익혔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먹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그것을 육체적인 고통이없고 정신의 평온한 안정 상태라고 말한다. 평정의 느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을 점차 줄여 가며 불필요한 근심을 극복하고 가장온전하게 지속되는 정신의 쾌락에 의지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정신의 쾌락은 육체적인 일에 깊게 빠지는 일과 그것에수반하는 고통을 방지해 주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은 육체적인 쾌락과 다름없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들은 믿는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집필자 ccvxcvx -
적인 생각이 내가 이것 저것 생각하는 근간이 되어 버린 듯.
인간 본성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이라는 것에 동감하는 중. '쾌락 우선'이라는 말이 절대 되는대로 살자 뭐 이런 게 아닌데,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내일을 위해 오늘을 즐긴다' 이 말이 가끔씩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 것 같아서.